[어서오세요,305호에] 설이가 모르는 윤아 이야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때
내가 나 자신을 부정하고 있을 때 '숨겨진 나'를 꺼내어 보여준 것은
윤성이었다.

 

 

그런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은 윤성이와 함께해준 사람들 -

 


비록 중간에 어딘가에 갇혀버린다거나, 밤새 술마시고 놀다가 길거리에서 잠들고
서로 좋아하면서 고백못하고 고생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답답해하는
일상적인 일들도 너무나 많았지만

 

 

20년이라는 인생을 살면서
'오윤아'를 '오윤아'로 만든 날은
당신이 나를 기다려주었던 그날.

 

 

 

그날이었다.

 

 

 

 

 

 

설이가 모르는 윤아 이야기

 

 

 

 

 

 

 

 

그날 가면서 얼마나 후회했던지.
그때는 '설이씨'라고 불렀던 마지막 통화 이후로 사실 정확한 기억이 없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 폭풍같았다고 표현해도 모자랄판이다.
정말 혼돈의 시간이었다.

 

 

 


완전한 카오스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어느정도 달려다가보면
스스로 멈춰서버리고 말았던 과거들-
멈춰서야만했고, 멈출 수 밖에 없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새장안에 갇혀있지 않았는데도
마치 날개를 잃어버린것같은 새처럼 가만히 있던 나.

 

 

대충 들었던 심리학 수업에서
묶어놓고 전기충격을 주던 개가 나중에는 줄을 풀어줘도
그대로 전기충격을 고스란히 받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확실히 그당시의 나는 전기충격을 받고도
마치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나를 옭아매는 족쇄도 없고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날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랗게 펼칠 수 있는 날개를 스스로 꺽어버린 것이다.

 

 

 

 

 

사실 그때의 난 내 스스로가 그렇게 날개를 꺽어버렸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 윤아야, 전철은 그쪽이 아닌데? 」
「 꼭 가야하는 곳이 있어서...괜찮으니 먼저 들어가 」

 

 

 

안색이 안좋아 보인다며
괜히 2차까지 붙잡아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기에게 애써 괜찮다고 변명했다.
친절하게 전철방향까지 알려주었지만 무슨 반항심에서인지 다른 곳을 향했다.

 


이제는 더 이상 갈곳도 없는데 ,
가야만 했던 곳에는 가지도 못했고...아니 가지 않았고
가고싶은 곳도 , 가야만하는 곳도 없는데
무슨 생각에 그런 말을 해버린걸까 .

길을 걸으며 스스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당신 -

 

 

당신은 얼마나 나를 기다려 주었을까 ?
가던 길을 멈추고서 그녀를 떠올려본다.
얼굴이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아 희미하다.
그저 생각나는 것은 환하게 웃을때 참 이쁘다는것과
눈매가 날카로워보여도 흔들림없는 눈동자가 참 멋지다는것 -

 

 

 

 

 

 

그러다 문득 마지막 통화 내용이 생각났다.

 

 

 

 

「 설이씨, 혹시 제가 못나올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 하신거예요?」
「 ...전화해서 묻는게 고작 그거니...」

 

 

 

사실 이런 질문을 하는 나에게도 그녀가 했던말을 그대로 하고싶었다.
고작 전화해서 묻는것이 겨우 이딴게 아니었는데...
내가 정말로 묻고싶었던건 '저를 받아주실 수 있는건가요?',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예요?'
'절 안좋아하시는거 아니었나요?' '받아주실 수 없다고 했던말은 뭔가요?'

'가면...어떻게 되는건가요?'

 

 

하지만 병신같은 나는 정작 하고싶은 질문들은 머릿속에 가득인데
그딴 질문을 해버린것이다. 늦게라도 이런저런말들을 물어볼까 하다가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대충 이유를 둘러대버렸다.

 

 

「 그냥요...」
「 너야말로 오늘 못나오겠어?」

 

 

 

그녀는 언제나 정곡을 찌르는 말들만 해온다.
진심을 감추고 싶었지만 언제나 진심을 알아채버린다.
내가 정말로 묻고싶은것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로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이미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두려운 사람.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녀의 질문에 나는 애써 이것이 나에게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야만했다. 그녀는 나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저 네가 하고싶은대로 하라는 말만 남겼을 뿐 -

 

 

어려서부터 하고싶은 일이 있을 때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는것보다
더 두려운 말은 「 네맘대로해 」였는데,
정말 나에겐 너무나 두려운 말이되어버렸다.
지금의 나는 어떤 결정을해도 후회할것 같은데 -

 

 


아직도 현실과 진심 사이에서 휘둘려지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기만했다.

옷장속에서 나와야하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나가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 -

 

 


너무나 괴롭다. 이런 고민들 속에서 숨막혀 죽을것만 같다.

 

 

 

 

 

떠올리는것을 그만두고 다시 길을 걸었다.
나의 발걸음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옮겨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곳에 가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걸으면서도 내가 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자피 지금 가도 그녀는 없을것이다.

 

 


너무나 늦어버린 시간 -

 

 


이미 놓쳐버린 기회 -

그런데 나 어째서 가고 있는걸까
왠지 눈물날것만 같은 기분이야.

 

 

 

 


이런 비참한 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야. '
'잘했어.'
'잘한거야.'
'내가 가봤자 서로 힘들었을거야.'
'안가길 잘한거야'


라는 스스로를 위한 위안뿐 -

 

 

 

 

 

 

 

 

 

왠지 뜨거운 물이 흐르는 기분에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길을 걸었다.
그때 저 먼 곳에서 무엇인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처럼 시간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마법처럼 시간이 멈추는 것이 느껴지고
멈춰버린 시간의 틈을 타 몇몇 사람들이 움직인다.
하지만 나의 머리는 이미 백지 -

 

 


보고싶어서 떠올리려 눈을 감아도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을 그녀에게 고정한채로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터벅터벅 다가갔다.
한발 한발 내딛을때마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녀의 모습 -
이건 꿈일까 ? 너무 후회되서 내가 만들어낸 환상인가 ?
이런 의심조차 없애버릴 만큼의 너무나 정확히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 ..... 왜왔어? 」

 

 

 

틀림없는 그녀였다.
무심한듯 내뱉는듯한 목소리.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다.
축쳐진 어깨, 꽤나 얇은 옷, 어두워진 하늘 -
어떻게 지금까지 있을 수 있던것일까.
애써 담담한척 물어오는 당신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까.
이번에는 정말 진심을 담아 묻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그쪽이야말로 왜 기다렸어요? 」

 

 

 

 


질문에 대한 답도없이 고개 숙인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야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작아져있는 모습 -
언제나 당당했던 당신이 ,
스스로를 싸가지 없다고 말했던 당신이,
자신감 넘치고 솔직했던 당신이,
누군가의 앞에서 이렇게 고개숙이고 어깨 쳐진 모습으로
너무나 한없이 약하고 무너져있는 모습으로 있을 수 있을거라는거
이전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어.

 

 

 

나와는 다르게 두려움따위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그런것들에 익숙해져서
나와 다르게 당당하고 강해서 괜찮은줄 알았는데 -
나처럼 상처받고 여린 사람이라는걸 그제야서 알았다.

 

 

 

너무나 작아진 그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만든것이 '나'때문이라는 생각에 죄스러움이 몰려온다.
내가 할 수 있는것은 사과 뿐 -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가면 어떻게되냐니.뻔하잖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지않아도 되는거야.

 

 

 

「 빨리 쫓아갈게요. 죄송해요. 」

 

 

난 왜 혼자 그런 고민에 빠져있던걸까?
두려움따위 함께 이겨내면 문제되지 않는것을 -

 

 

 

「  약속할게요 」

 

 

 

난 밀려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똑같은말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다짐했다.

 

 

 

당신의 작아진 모습 다시는 보고싶지않다고.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이젠 내가 지켜줄거라고.
응, 약속할게요.

 

 

 

 

 

 

 

 

 

 


명동의 거리 -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뚫고 뛰어오는 사람.
주말 오후인지라 사람이 많은 이 거리에서도 한번에 보이는 사람이다.
특별히 외모가 뛰어나거나(물론 떨어지지도 않지만)
키가 커서 그런것은 아니다.

 


그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빛나보일 뿐 -

 

 

 

「 왜이렇게 뛰어왔어요.」
「 하아,하아-  미안미안....오래기다렸지 」
「 괜찮다고 제가 몇번말해요. 자, 이걸로 손좀 녹여요 」
「 이렇게 추운데 안에서 기다리라니까...밖에서 얼마나 기다린거야?」

 

 

 

그녀는 내가 건낸 따뜻한 캔커피를 쥐고는 따뜻하다며 좋아했다.
얼마나 기다렸냐는 그녀의 말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지만
대략 30분정도라고 둘러대는 이야기는 이젠 그녀도 거짓말이란 걸 알거다.
차가워진 손을 잡아주며 손이 차다며 투덜투덜 -

 


무심한듯하면서도 툭툭 내뱉는 말들이 이제는 진심이 아니라는것 쯤은 다 아는걸.

당신이 그날 기다려준 것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일 -
매번 약속시간에 먼저 나와 기다리는건
다시는 당신을 기다리고 싶게 만들고싶지 않은 나의 다짐들 중 하나.

 

 

 

「 윤아야, 빨리 따뜻한곳으로 가자 」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따뜻하게 잡아주며
나를 이끌어 주는 강한 손 -

 

 

 

 

 

 

 


내 이름을 불러주는 당신이 있다면
정말로 난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해.

 

 

 











<그림의 출처는 305호 네이버 공식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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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윤설 2012/01/27 19:59 # 삭제 답글

    아... 너무 슬프고 감동 ㅠㅠ 덕분에 원작을 좀더 잘 이해할수있게됬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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